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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천용 재일화가 “꿈에도 못잊는 어머니 모습 담았죠” [광주일보/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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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등현대미술관
작성일21-05-06 16:47 조회63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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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천용 재일화가 “꿈에도 못잊는 어머니 모습 담았죠”
'70여 년 만의 귀향' 한국 정착 7년 만에 ‘낯선 귀향’전
16일까지 광주 무등현대미술관···인물·풍경 50여점 전시

전시장에서 만나는 50여점의 작품은 무엇보다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이다. 풍경화, 인물화, 정물화 모두 표현주의 화가를 연상시키는 대담한 원색 표현이 눈길을 끈다. 특히 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담은 인물화는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가 ‘꿈에도 잊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재일교포 작가 안천용. 올해 여든 다섯의 노(老) 화백은 7년전 고국으로 돌아왔다. 70여 년 만의 귀환이었다.

그의 작품은 오는 16일까지 광주 무등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월하미술 기획전 ‘안천용-낯선 귀향’전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 정착 후 처음 여는 대규모 개인전이다.

  
안 화백의 삶 속엔 ‘슬픈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 삶의 풍경은 화폭에 자연스레 흘러나온다. 경북 포항 출신인 안 화백은 4살 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만났고, 그림을 공부하기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지만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며 꾸준히 창작 활동을 펼쳤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가난이 늘 함께였던 삶이었고, 결혼 후에는 자식들을 키우느라 작업에 전념할 수는 없었지만 언제나 ‘그림’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서 보듯, 그의 작품 속에는 늘 어머니가 있다.

“인물화를 그리게 되면 저도 모르게 꼭 어머니를 그리게 돼요. 제 손을 꼭 잡고, 아버지를 기다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 어딘가에 강렬하게 남아있는듯 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미인도 아니고, 글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강인하셨죠. 작품에는 아이를 지키겠다는 어머니의 의지가 자연스레 담긴듯도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풍경, 인물화와 함께 전시장을 장식하고 있는 건 꽃그림들인데 대부분 ‘튤립’이다. 이 역시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 어머니는 막걸리와 일본주 등 술을 빚어 아이들을 키웠고, 안 화백은 어린 시절 어느 날 무슨 꽃인지도 모른채 엄마에게 ‘꽃 한송이’를 선물해 주었었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술을 배달하고 돌아오는데 너무 예쁜 꽃이 보여 꺾어 가져다 드렸더니 참 좋아하셨죠. 그 때 어머니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어요. 어머니가 우리 육남매를 키우셨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셨는지 모르겠어요. 제 그림의 소재들은 모두 오랜 기억 속에 잠겨 있는 것들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만나는 원초적이고 오묘한 느낌의 색감과 거친 질감의 화면은 그림에 깊이감을 더해준다. 또 강한 색깔의 대비가 겉돌지 않고, 자연스레 어우러지면서 작품에 힘을 부여한다. 강원도 영월, 경북 경주 등을 방문하고 그린 풍경화 등에는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낸 이야기가 담겨 있고, 꽃그림 역시 강렬한 생명력을 전달한다.

10년 전 처음 한국을 찾은 그는 그 때 본 풍경과 사람들이 마음에 남았고, 3년 후 아예 한국에 정착하기로 마음 먹고 귀국했다.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죽는 건 자연스러운 거지요. 늘 고향을 그리워했고, 그 마음들이 언제나 저에게 있었던 듯합니다. 고향을 등지고 바다를 건너던 어머니와 또 그 또래 여인들의 모습이 늘 기억에 남아 있는데, 그 장면들을 꼭 그려보고 싶네요. 우리 나이대 사람들은 식민지, 해방, 전쟁 등 수많은 경험을 해왔지요. 일본에 살면서 많은 차별과 어려움을 감내하기도 하고, 정체성 문제로 고민도 했지만 그 시간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그림들은 굳이 안 화백의 삶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언제나 영원한 안식인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고 있어 쉽게 마음이 가기도 한다. 사실, 안 화백은 광주와 별 연고가 없다. 이번 기획전은 전시를 준비한 서울의 월하미술이 안 화백의 그림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소를 물색하다 광주를 점찍어 이뤄졌다.

“일본에서도 작은미술관을 갖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오면 이야기도 나누고, 제가 그림 그리며 공부하는 그런 공간이었죠. 기회가 되면 한국에서도 그런 공간을 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작가는 해도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바보들”이라며 “마지막 순간까지 그림을 그리다 가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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